툭, 툭. 비가 쏟아진다. 어둠이 짙게 배인 하늘에 하나, 둘 시장가의 붉은빛이 떠오른다. 좁은 골목 사이사이 피어오른 등빛은 천막에 맺힌 물방울에 이지러진다. 술 한 잔 기울이며 두런, 이야기 나누는 소리는 빗소리에 잠기고, 저 머리 위의 종소리는 환청처럼 귓가에 다다른다. 반바지를 입은 작은 소년은 첨벙, 첨벙 웅덩이를 밟으며 뛰어든다. 조그만 웅덩이 속에는 달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아 한없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밤이다.
- 아무도 잠들지 마라! 아무도 잠들지 마라!
검은 우비를 쓴 남자들이 음침한 얼굴로 소리치고 다니면 우박처럼 쏟아지는 빗물 속 사람들은 폭음에 몸을 숨겨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.
- 아무도 잠들지 마라! 아무도 잠들지 마라!
도전자들이 모일 때까지 그 누구도 잠들 수 없으리라!
- 공주의 웃음에 도전하러 왔소!
콰르릉 쾅!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 섬광은 천지를 여는 굉음으로 한 남자를 맞이한다. 높게 올려 묶은 긴 머리칼 사이 파묻힌 검붉은 머리끈은 짧은 빛을 받아 핏빛으로 빛나고, 강인하게 다물린 입술과 이어진 깊은 눈빛은 흐트러지지 않는 의지를 담아 일렁인다.
- 왕자님, 제발! 소녀의 간청을 들어주시옵소서. 저 너머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합니다. 붉고 흉측한 악마는 팔 척이 넘는 거대한 키에 삼 자나 되는 송곳니를 가져 위대하신 왕자님 또한 당해내지 못하실 겁니다.
- 오, 나의 소중한 아이야. 나는 가야만 한다. 나는 가야만 한다. 공주의 웃음은 모란의 향기처럼 황홀할 것이다. 공주의 웃음은 우리 왕국을 다시 세울 수 있게끔 해주는 신의 노랫소리일 것이다. 나는 그 웃음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.
투두둑,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마치 무한히 쏟아지는 총알처럼 두 사람을 겨냥한다. 작은 소녀는 눈앞의 문이 견고한 철옹성이길 간절히 빌고, 남자는 무릎 꿇은 소녀는 보이지 않는 듯 맞물린 문의 틈새를 응시한다. 소녀는 흐르는 눈물인지, 단순한 빗물인지 구별조차 하지 못하며 젖은 땅에 이마를 댈 뿐. 말이 없다. 말은 소용이 없다. 하지만 그렇다고 침묵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.
- 도전자인가? 도전자구나. 도전자다!
어리석은, 어리석은, 어리석은!
- 그래, 도전자다! 공주의 시련에 감히 맞서려는 자가 바로 나다!
비웃는 듯, 조롱하는 듯 콧수염을 제각기 멋들어지게 기른 세 쌍둥이가 성문을 열고 나와 정신없이 그들의 주변을 배회한다.
- 아니, 아니 아니. 멍청한, 멍청한, 멍청한 사람이 바로 너다!
공주의 웃음은 허상일 뿐이다!
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는 소원 또한 헛된 약속일 뿐이다!
저 너머에는 얼굴이 없는 흉악한 털북숭이 괴물이 살고 있고 너는 다시는 이 문을 나오지 못 할 것이다!
- 이 뒤에 무엇이 있던 상관없다! 내가 쫓는 것이 있는 것으로 향할 뿐. 드높은긍지와 고결한 이상에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!
빗속을 뚫고 내치는 소리는 마치 공성전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함성처럼 거대하고 성문에 닿은 목소리는 문을 부술 듯 강하게 꽂힌다. 거센 기세는 결국 험상궂은 문지기들을 무너뜨린다.
- 어쩔 수 없지, 어쩔 수 없지, 어쩔 수 없지!
우리는 경고했다. 너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!
가슴속의 염원에 눈이 먼, 공주의 추악한 얼굴에 심장이 멎은 자여!
모란 꽃이 피어나는 5월, 너는 죽을 것이다!
하나, 둘, 셋.
세 명은 문을 열었고, 한 명은 문 밖에서 기다릴 뿐이다.
결과는, 언제나 침묵을 이어가니.